너무 맑아서 너무 깨끗해서 마냥 좋은 날, 간월산 간단걸음을 하고왔다.
악마와의 싸움을 시작한지 5년이 가까워 온다.
마지막 검사를 하루 앞둔 날, 꿀맛같은 이틀간의 휴가가 생겼다.
내내 겨울같지 않은 포근함이 이어지던 가운데 낮기온이 17도까지 올라가는 봄날을 착각하게 하는 2월 중순,
전날 내린 비로 너무나 깨끗한 딴(?)세상이 펼쳐졌다.
마냥 집에서 쉬기에는 너무 아까운 날씨다.
이런날 자연속에 몸을 던지면 온 몸의 세포들이 마구 깨어 날텐데..... ㅎ
때이른 포근함과 종일 내린 비로 2월 초에 내려 쌓여있던 눈까지 녹여 놓아서 조금 높은 산걸음은 온통 질퍽거릴게 뻔한 사실.....
간단걸음이라도 하고픈 욕심에 반해 산행지 선택 고민에 빠졌다.
비가와도 질퍽이지 않는 경주남산, 배내고개에서 배내봉이나 능동산쪽 데크로드, 운문령에서 쌀바위까지 임도...
아니면..... "그래!! 임도따라 간월재나 갔다오자."
영남알프스 산악문화관, 보온 도시락에 흰죽 한통 담고 물 한병만으로 휘~익 달려왔다.
검사를 하루 앞두고 무리한 운동을 피하라는 경고(?)도 있었지만, 질퍽거림을 피하려 이른 시간을 피하다보니 해가 중천인 시간에 걸음을 시작한다.
임도로 오른다.
물기 머금은 흙과 낙엽의 야릇한 향기가 콧노래를 절로 만든다.
걸음 시작 3~40분을 코와 긴 호흡으로 걸었다면 지금부터는 눈으로 걸음을 할 차례....
오늘은 한번도 가로지르기를 않고 구불구불 임도를 온몸의 시신경을 열어 놓고 걸어볼 요량이다.
임도를 걸으며 올려다본 간월공룡능선과 간월재 방향은 너무 깨끗하다.
걸음시작 1시간 30분, 간월재로 오른다.
일년에 이렇게 맑고 깨끗한 날을 과연 몇번이나 볼 수 있을까???
그냥 집에서 방바닥에 엑스레이나 찍고 리모컨의 버튼 누르기나 했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다.
'바람도 쉬어가는 간월재 휴게소'에서 가져간 죽 한그릇 먹고 여유를 부린다.
목덜미에 따갑게 내리는 햇살도 맞고, 눈이부셔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하늘의 깊이도 재어보고, 스걱이는 철지난 억새의 부딪힘도 노래로 들으며...
연방 엉덩이를 돌려 이리보고 저리보고, 긴 호흡에 행복함을 한껏 부풀린다.
간월재까지만 걷고 가려던 마음은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
양지쪽인 간월산쪽은 질퍽이지 않을터, 간월산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가기로 한다.
여차하면 간월공룡능선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간월재 억새밭을 한 눈에 담는다.
신불산쪽 응달에 아직 눈이 조금 남아있다.
몇걸음 걷고 서서 올려다 보고, 또 몇걸음 걷고 서서 내려다 보고...
산과 싸우려 오지 않았으니 이런 걸음이 당연한 것일진데 평소에는 왜그리 걸음의 시간과 거리에 집착하게 되는지... ㅠ.ㅠ
간월산 정상을 바로 앞에두고 한 눈에 들어오는 영남알프스를 파노라마로 담아 본다.
언제봐도 언제 찾아도 너그러이 품어주는 영알이 있어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
간월산 정상으로 오른다.
정상석 앞에서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커피 한잔 마신다.
날씨가 너무 아까워 마냥 머물고 싶지만 그래도 어쪄랴.... 아쉬움 뒤로하고 내려간다.
간월공룡능선으로 하산을 생각도 했으나 질퍽이고 미끄럽고....
어차피 오늘은 질퍽임을 피하고 여유로움을 가지러 왔으니 오름길의 임도로 내려가기로 한다.
이런날은 이런 그림들이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간월재에 있어도 참 좋을것 같다.
해질녁의 그림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오를때처럼 구불구불거림의 여유를 온몸에 담고, 맑고 깨끗함을 폐부 깊숙히 담고서야 산악문화관으로 내려선다.
깨끗한 날씨가 아까워 찾은 간월산 간단걸음...
간단걸음이 조금 아깝기는 했지만, 자연이 준 선물을 온 몸으로 받아안은 행복한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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